“영어의 ‘기초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영어엔진 불량’ 상태에서
무조건 “미국인과 연습만 자꾸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또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하다가
“나는 이제 머리가 굳었나 봐. 영어는 역시 어렸을 때 해야 돼” 하면서
영어 안 되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만다. ”
몇 년 전 어느 날 오후, 모 중견기업의 중역 한 분이 내 연구실을 찾아왔다.
수인사를 나눈 뒤 첫마디가 “선생님, 저 좀 살려주십시오. 그놈의 영어 때문에 죽을 지경입니다.”
그야말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듯 한 다급한 호소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그 사연인 즉 K상무는 대학을 졸업한 뒤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여 지금까지 15년간 근무해왔는데,
그 동안 착실히 진급을 거듭하여 상무 이사 자리에까지 오른, 업계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회사가 미국의 한 유명 회사와 기술 및 자본 제휴를 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물론 미국과의 제휴 얘기가 오고 가면서부터 나름대로 회화학원을 다닌다, 미국인 개인 지도를 받는다 하면서 1년 넘게 꽤 대비를 해 왔지만,
막상 미국인 부사장을 비롯한 미국인 기술 고문들과 함께 근무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태가 점점 심상치 않아 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루에도 수 없이 날아드는 영문 메모는 그래도 써 있는 거니까 그럭저럭 사전과 씨름을 해 가면서 어렵사리 이해를 한다 치지만,
시도 때도 없이 걸려 오는 사내 전화는 정말 질색이었다.
도대체 무슨 소린지 알아들어야 뭐라고 대답이라도 해보지,
그저 “I beg your pardon?”, “I’m Sorry?”만 연발하다가 끝나기 일쑤였다. 그뿐인가? 아침마다 열리는 회의는 정말로 죽을 맛이었다.
가끔씩 등장하는 전문 용어 외에는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상대가 뭐라고 하든 그저 전문 용어 몇 마디만 반복하면서 그냥 바보처럼 히죽히죽 웃고 있을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중학시절부터 미국에서 공부했다는 사장은 이 속 타는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정없이 영어로 회의를 진행해 대면서
“K상무도 어서 영어를 좀 하셔야겠습니다.”하는 것이다.
게다가 요사이 갓 입사한 사원들 중에는 어디서 그렇게 영어를 배웠는지 미국인 고문들과 농담까지 하면서
유창하게(?) 회화를 하는 녀석까지 있는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늘같이 높기만 하던 상무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져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래서 다급한 김에 아침저녁으로 미국인 개인 지도를 받고 있는 게 벌써 몇 달째인데,
간단한 회화정도는 좀 느는 것 같기도 하지만 본격적인 내용의 대화에는 별 도움이 되는 것 같지 않다.
이런 상태로 몇 달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아침만 되면 회사 가기가 두렵고,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식은땀이 나는 증세까지 생겼으니
평생 직장으로 삼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둘 수도 없고 어떡하면 좋습니까?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었다.
이런 증상은 우리나라에선 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대충 마음속에 짐작되는 바 있어서, 그 자리에서 당장 ‘진단 테스트’를 실시했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대로의 진단이 나왔는데, 한 마디로 ‘영어엔진불량’, 다시 말해서 ‘기초력 부족’이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면 K상무의 영어 상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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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째, 기본 문법의 자동화가 되어 있지 않고
둘 째, 어순감각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으며
셋 째, 꽤 어려운 단어는 알면서도 기본 동사의 쓰임새는 잘 모르는 등, 어휘력의 균형이 잡혀 있지 않은 상태고
넷 째, 그 결과로 중3 수준 영어 문장의 독해 속도가 1분당 60단어 정도로 매우 느리며
(웬만한 정도의 말을 알아들으려면 1분당 최소한 160단어 이상은 되어야 함)
다섯째, 영어를 소리내어 연습한 적이 별로 없어서 Stress, rhythm은 고사하고 간단한 text를
소리내어 읽는 것조차도 듣기에 답답할 정도로 더듬거리고
여섯째, 자신감 부족으로 심한 실수 공포증을 갖고 있으며…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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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우리나라 성인 영어 학습자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를 몽땅 한 몸에 짊어진 듯 한 모습인데,
이런 상태로 미국인 회화만 열심히 했으니 마치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축구 연습을 하는 격이지,
아무런 소득도 없이 죽도록 고생만 하면서 시간과 돈을 낭비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보면 이런 상태의 사람이 K상무뿐만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20여 년 동안 영어 선생을 해 오면서 보면 이런 분들이 너무도 많다.
영어의 ‘기초력’이 제대로 잡혀 있지 않은 ‘영어엔진 불량’ 상태에서 무조건 “미국인과 연습만 자꾸 하면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다가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또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하다가 “나는 이제 머리가 굳었나 봐. 영어는 역시 어렸을 때 해야 돼” 하면서 영어 안 되는 것을 나이 탓으로 돌리고 만다.
그러나 영어가 잘 안 되는 것은 나이 때문이 아니라, 대부분 기초력 부족으로 인한 영어엔진 불량과 잘못된 학습방법 때문이다.
K상무와 같은 기초력 부족 상태로는 미국인 회화를 아무리 해도, 아니 미국에 가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몇 마디 토막말 밖에는 근본적인 영어 실력은 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일제시대에 일본 사람이 하던 방법을 그대로 답습해 온 상태이기 때문에, 입시 중심의 학교 과정에서, 의사 소통에 필요한 기초력 훈련을 제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설령 대학을 졸업했다 하더라도, 중·고교때 운 좋게 영어의 감을 터득한 몇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K상무처럼 “공부는 꽤 한 것 같은데 제대로 아는 것은 별로 없는” 기초력 부족 증상을 갖게 되는 것이다.
기초력 부족 증상을 몇 가지 나열해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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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째, 회화 예문이 외워지지 않고
둘 째, 어렵사리 외운 예문도 금방 잊어버리고
셋 째, 모처럼 외국인과 대화를 해도 외워 뒀던
문장 몇 마디만 반복할 뿐,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대책이 없고
넷 째, 외운 말은 어떻게 한다 치더라도 상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다섯째, 어떤 문장이라도 이해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실력이 없으므로 영어만 하려하면 불안하고 초조하며,
여섯째, 토플·토익 등의 시험 공부를 해도 처음 얼마간은 문제풀이
요령 등을 배워서 100점 정도는 상승하지만, 그 이후로는 좀처럼 성적이 좋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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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이런 증상들이 나타나는데 처방은 간단하다.
‘기초력’을 처음부터 제대로 다져 주면 대부분 금방 살아난다.
기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상태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길어 봐야 6개월 내지 1년 정도만 하면 꽤 그럴듯한 영어를 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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