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외출장을 꽤 많이 다니는 편이다. 세계 각국에서 해마다 열리는 영어 교육자 대회에 참석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여러 나라를 다니다 보면 우리처럼 열심히 영어를 배우는 나라도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새벽부터 밤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학원에서 또 배우고, 그것도 모자라서 과외공부까지 하고, 또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직장에서 하고, 학원가서 하고, 출퇴근길에 영어 테이프 듣기까지 참 열심히도 한다.
또 책방에 가면 영어 책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TV, Radio에서도 새벽부터 밤까지 수시로 영어강좌가 흘러나온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렇게 전 국민이 마치 “영어를 배우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것처럼 열심히 하는데 희한하게도 영어 잘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도합 10년 이상 영어를 배웠으면서도 AFKN, CNN 방송이라도 한 번 들어볼라치면 그저 가끔씩 “Washington”, “Clinton” 등의 반가운 소리 몇 마디만 들릴 뿐이고, 모처럼 외국인을 만나서 소위 “Free talking”이라는 것을 해봐도 미리 외워두었던 토막영어 몇 마디만 써먹고 나면 상대가 뭐라 하든 그저 바보같이 히죽 히죽 웃고 있기가 일쑤다.
회화는 학교에서 별로 안 해봤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 치고, 그러면 10년 넘게 학교에서 배운 독해는 어떤가? 영자 신문 잡지를 읽어봐도 모르는 단어 투성이에다, 간단한 기사 한 토막을 해석하는데도 몇 십분씩 걸리고, 모처럼 영문 편지를 한 장 쓰려고 해도 처음 몇 줄 가지고 씨름 하다가 그냥 포기하기가 일쑤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10년 이상씩이나 영어 공부를 하고도 무엇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다. 10년이면 태권도를 배웠어도 최소한 검은 띠는 매고 바둑을 두었어도 최하 5급은 될 텐데, 영어는 이상하게도 잘 못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세계적으로 머리 좋기로 소문난 우리 한국인이 왜 유독 영어만 하면 이렇게 쩔쩔 매는 것일까? 지금까지 영어선생을 해 오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수강생들에게 이 의문에 대한 질문을 해보았는데, 참 다양한 의견들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