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J박사 얘기다. 궁금한 순서에 따라, 물 흐르듯이 흐르는 영어의 원리를 알게 된 J박사가 신나게 잘 나가다가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까지 했었는데, 그 다음 얘기다.
매일같이 찾아와 영어문장 만들어 말하는 연습을 한 동안 하자,
J박사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서 꽤 복잡한 문장까지도 만들어내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래서 바쁜 스케줄에 매일같이 돌봐주는 것도 힘들고 해서 이제 졸업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문제가 생겼다.
때마침 열린 국제학회에 ‘이번에야말로 유창한 영어를 구사해 봐야지.’
마음 먹고 참석했는데, 나와 함께 할 때는 그럭저럭 되는 듯 하던 영어가,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영 풀리지 않고 벅벅거려서 곤욕을 치렀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남의 영어를 알아듣는 것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것 같은데,
본인이 말을 하는 것은 마음처럼 잘 안 되더라는 것이었다.
지난번까지는 아예 못하니까, 처음부터 포기하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영어원리도 배우고, 문장도 만들어낼 줄 알고 해서,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애써보았다.
그런데, 막상 말을 하려면 마땅한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틀리면 어쩌나 겁부터 나고,
자신의 발음이 우습게 들릴까봐 걱정이 되고,
또 옆에서 다른 한국 학자들이 쳐다보고 있으면 입이 굳어서 말이 안 나오고 하는 통에 제대로 말해 본 것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바로 영어공포증이었다.
요즘은 영어울렁증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영어공부를 한 사람들이 거의 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나도 한때 이것을 없애느라고 고생을 많이 했던 아주 고약한 놈이다.
이 공포증은, 머릿속의 영어뼈다귀들 위에 끈끈한 오물같이 엉겨 붙어서,
아무리 뼈다귀들을 일으켜 세워 보려고해도 일어서지 못하게 막는다.
이 공포증이 심하면, 영어실력에 상관없이 영어가 안 된다. 영어만 하려면 머릿속이 하얘지고, 알던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횡설수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몇 마디 하다가 어색한 웃음으로 포기하고 만다.
이 증상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일본 사람들에게서 특히 심하다. 영어 공부방식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어연수학원 같은데서 보면 남미 출신 학생들은 틀리거나 말거나 무조건 떠들어대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좀처럼 말들을 잘 안한다.
바로 이 증상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어를 제대로 하려면 바로 이 머릿속 오물을 제거해야 한다.
이 영어공포증에서 대표적인 것이
1) 실수 공포증(틀릴까봐 겁난다)
2) 발음 공포증(발음이 이상해서 창피 당할까봐 겁난다)
3) 체면 공포증(남이 보면 잘 못한다)
곰곰이 따져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인데,
일종의 공황장애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영어만 하려면 생기는 증상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전에는 영어를 꽤 하는 사람이건,
잘 못하는 사람이건 영어만 하려면 마음이 편치 않고,
또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다 하지 못한다.
■ 1) 실수 공포증
글자 그대로 틀릴까봐 겁이 나는 증상이다.
소심하거나 완벽 주의적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특히 많이 가지고 있다.
영어를 하려면 누가 옆에서 채점이라도 하는 것처럼 주눅이 들어서,
알던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틀릴까봐 불안해서 말 못하는 증상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시험 위주의 학교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영어를 의사소통의 도구로 배운 것이 아니고, 시험과목으로 배웠기 때문이다.
이 실수 공포증은 쓸데없는 걱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학교에서 워낙 틀리면 안 된다고 세뇌를 받아서, 영어를 할 때 단어 하나, 문법 하나 틀리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나 명심할 것은, 아무리 자기 나라 말이라 할지라도 한 마디도 틀리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집에서 식구들끼리 하는 말을 녹음해서 들어보시라,
우리말조차 단어 사용이나 문법 등 틀리는 곳이 얼마나 많은지 놀라게 된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또 그것을 트집 잡는 사람도 없다.
영어도 마찬가지다.
미리 원고를 써서 읽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 군데도 틀리지 않고 말을 한다는 것은 원어민의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실수 공포증이 생기는 또 하나의 이유는 영어의 원리를 제대로 모르고 영어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영어문장을 만드는 기본 원리를 모르고 무조건 예문들을 외워서 말하려고 하니까, 외우는 것마다 까먹을 수밖에 없고, 맞는지 틀리는지 말할 때마다 불안한 것이다.
모든 것은 큰 원리를 알면 쓸데없는 공포에서 자유로워지는 법이다. 성경말씀에도 있지 않은가?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You will know the truth, the truth will set you free.”
– 요한복음 8장 32절
원리를 모르니까 불안한 것이다.
내가 훈련소에 갔을 때 일이다.
툭하면 기합을 받는데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또 어떤 기합을 받을까? 무엇을 어떻게 잘해야 기합을 받지 않을까? 그러다가 어느 날 원리를 깨달았다.
우리가 잘하든 못하든 간에 기합은 기합스케줄에 맞춰서 주어진다는 것이었고,
또 어떤 기합을 받건, 소리만 요란하지 절대로 다칠 염려도 없고,
아무리 고된 기합 중이라도 식사시간이 되면 틀림없이 밥을 준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