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죽살]8. 정철샘 영어공부 시작한 이야기

자, 지금까지 ‘어순감각’도 배우느라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
잠시 머리를 식히는 의미에서 옛날에 내가 영어 공부하던 때 얘기를 잠시 들려 드릴까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듬해인 1968년 여름이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30여 년전, 내가 스무살 되던 해 얘기다.

그 시절 나는, 지원했던 의과대학 입시에 떨어진 뒤로 몇 달간 해오던 재수생 생활을 때려치우고,
느닷없이 ‘입산 수도’를 한답시고 출가하여 벌써 근 일년 가까이,
평생을 2대 독자 아들 하나 잘 되기만 바라며 살아온 홀어머니의 속을 무던히도 썩이고 있던 터였다.

난데없이 웬 ‘입산 수도’인가 하면 그 전말이 다음과 같다.

그 당시, 학창 시절에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은 거의 다 대학에 합격하여 저마다 미팅이다 뭐다 하며 그야말로 꽃 피는 청춘을 만끽하고 있는 판이었는데,
나 홀로 우중충한 독서실에 쭈그리고 앉아 골치 아픈 입시 참고서만 몇 달 동안 째려보고 있다보니 새록새록 묘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광대한 우주의 눈으로 볼 때 한낱 티끌보다도 작은 ‘지구’라는 이름의 별 위에서,

그까짓 대학 하나 들어가 보겠다고 아등바등거리고 있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또 석가모니, 달마대사 등 대학이라고는 문턱에도 안 가보고도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던 동서고금의 모든 ‘도사(?)’들의 선례에 비추어 볼 때,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하찮은 대학입시 따위에 귀중한 청춘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보다 큰 뜻을 가지고 ‘직지인심 견성성불’하여 ‘인생의 진면목’을 깨닫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동안 ‘참선’, ‘도통’등에 관한 책들을 탐독하던 나는
‘온갖 유혹과 잡귀들이 우글거리는 사바세계’에서는 내 뜻을 이루기가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책 몇 권과 쌀 한 말을 달랑 둘러메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무모한 짓이었으나,

그 당시 나로서는 더 할 수없이 진지하게, ‘달마대사’가 ‘9년 면벽’ 끝에 ‘득도’하였다는 그 ‘깨달음’을 얻기 위해
밤낮으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에 힘을 모으고 ‘용맹정진’하였었다.

이것이 그 ‘입산 수도’의 전말인데,

마침 떨어진 식량을 조달하러 며칠 간 집에 다니러 왔던 길에 내 운명을 뒤바꾸는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 날이 마침 일요일이었는데, 책을 몇 권 사려고 시내에 나갔다가 광화문 네거리에서 우연히 친구 하나를 만났다.
한참 반갑게 이 얘기 저 얘기 떠들다가 어디를 가느냐고 하니, 영어 회화 연습하러 미군 장교를 한 사람 만나러 가는데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때까지 회화는 고사하고 미국 사람이라고는 영화 따위에서나 보았을 뿐이었으나 “그까짓 영어 회화가 별거냐?
그냥 학교에서 읽고 쓰고 하던 대로 하면 되겠지.
또 혹시 도통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 한번 구경이나 해보자”는 생각에서 친구를 따라나섰다.

철없던 시절 나름 진지하게 인생의 진리를 고민하러 지리산으로 ^^

그때 만약에 그 친구를 따라가지 않고 그냥 내 갈 길을 갔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쯤,
잘되었으면 신선이 되어 구름을 타고 날아다니고 있거나,
잘못되었으면 미아리 고개 밑에서 온갖 중생들의 사주 팔자를 봐주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난생처음 영어 회화라는 것을 해보게 되었는데,
친구의 소개에 따라 “How do you do?” “My name is Jung Chul. Nice to meet you.” 까지는 내가 생각해도 잘 나갔지만 정작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이 ‘존슨’이라는 미군 대위가 친구와 몇 마디 나누다가는 나한테 무언가를 물어보고,
또 친구와 한참 무슨 얘긴가를 하다가는 나한테 뭐라고 하곤 하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거의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게다가 더욱 황당한 것은 고교 시절 영어 실력이라곤 별 볼일 없이 나보다도 못하던 친구가,
내가 당황해서 “What?” “I beg your pardon?”만을 연발할 때마다 옆에서
“그건 네 전공이 뭐냐고 묻는 거야.” “미국에 가 본적 있느냐는데?” 하며 통역을 해 주는 것이었다.

내 비록 고교 시절에 밴드반, 유도반, 역도반 등 과외 활동을 열심히 하느라고 학과 공부를 좀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전국의 수재들만 다닌다는(그 당시에는 그랬다) ‘경기고등학교’에서 중간 이상은 유지하던 실력이었다.

그런데도 그 ‘존슨’인가 하는 미국 친구의 말을 못 알아듣고 쩔쩔맨다는 것과,
또 별로 대단치도 않던 친구 녀석이 좀 배웠다고 내 앞에서 우쭐대는 것에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그야말로 “정철 도사(?) 인생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라는 생각도 들고,
심지어는 “그까짓 영어 몇 마디도 못 알아들으면서 무슨 ‘도통’을 하겠는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서 미군 부대를 구경시켜 준다는 것도 마다하고,
그들과 헤어지는 길로 곧장 책방으로 가서 ‘영어 회화’라고 쓰여있는 책을 한 권 샀다.

‘처음 만났을 때’, ‘취미를 물어볼 때’ 하는 식으로 회화 예문들을 주욱 나열해 놓은 얄팍한 책이었는데,
가만히 들여다보니 한 일주일 정도만 열심히 하면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까짓 영어 회화, 일주일만에 얼른 끝내 버리고 산으로 돌아가자.”하고 생각하고는 집에 돌아가는 길로 그 책을 외우기 시작했다.

한 일주일 동안 열심히 애쓴 결과 책에 나온 예문들을 거의 다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예문마다 1번, 2번, 3번,… …하는 식으로 번호를 붙여 놓고 다시 일주일간 재정리 암기를 해서,
나중에는 “몇 번 예문!” 하면 즉시 그 예문이 튀어나올 정도로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이렇게 한 보름 동안 열심히 회화책 한 권을 떼고 나니 ‘존슨 대위’ 아니라 ‘맥아더 장군’이 온다 해도 얼마든지 멋지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번 그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존슨 대위와 다시 만날 약속을 하게 했다.

운동경기로 치자면 “Return Match”신청을 한 셈이다. 약속 날짜가 정해지자, 그 동안 외웠던 예문들을 다시 반복 연습하는 한편,
만났을 때 나올만한 예상대화들도 만들어서 혼자 가상 실습까지 해보는 등 그야말로 철저한 준비를 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이 ‘정철 도사’를 우습게 보지 말라.
나는 이미 보름전의 내가 아니다.”

마치 심산유곡에서 복수의 칼을 갈다가 홀연히 나타난 ‘돌아온 외팔이’처럼 당당하게 존슨대위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2018-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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