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대’ 주변을 살펴보면 미쳐 ‘파일’로 정리되지 않은 채로,
그냥 그 근처에 ‘임시로’ 쌓여 있는 자료들이 있는데, 앞에서 말했던 ‘작업 기억’의 지속시간(20초)보다는 오래 가지만,
이것 역시 그 상태로 그냥 방치해 두면 얼마 안 가서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그냥 임시로 쌓여 있다가 사라지는 자료들을 ‘임시 기억(Holding Memory)’라고 부르고,
파일 박스 안에 잘 보관되어 있는 자료들을 ‘영구 기억 (Permanent Memory)’ 라고 부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학습의 최종목표는 바로 이 ‘영구기억’을 만드는데 있다.
학교 다닐 때 ‘당일치기’라는 것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시험 전날 밤새도록 달달 암기를 해둔것들이 막상 시험지를 받아들고 답을 쓰려고 하면 캄캄하게 생각이 안 난다든지,
다행히 답을 쓰는 것까지는 성공했다 하더라도 며칠 뒤에 생각해보면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임시 기억’의 대표적인 예인데, 영어공부를 하다 보면 그런 경우를 수없이 겪게 된다.
외운지 몇 시간도 안돼서 까먹고, 또 외우고, 또 까먹고 하다가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하고 한탄을 하며 그만 포기하고 만다.
그런데 참으로 맹랑한 것은 그토록 외우려고 애를 쓰는 것은 잊어버리면서도, 그냥 재미로 보았던 영화 같은 것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생생하게 생각이 나는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리 애를 쓰며 노력을 해도 기억파일로 확실하게 보관시키지 않은 것은
‘임시기억’상태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고, 영화 같은 것은 별다른 노력 없이 그냥 재미로 본 것이라 할지라도 강력한 ‘영구기억’중의 하나인 ‘에피소드 기억(episodic memory)’로 단단히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이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에피소드 기억 얘기가 나온 김에 좀더 설명을 하자면, 우리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기억의 대부분은 이 에피소드 기억으로써,
일부러 외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되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서, 부엌 찬장 어디에 무엇이 있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든지,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을 기억한다든지, 10년 전에 살았던 동네모습을 기억하고 있다든지,
일주일전 동창회에 누구누구가 나왔었는지 생각해 낼 수 있다든지,
또는 어떤 단어나 문장을 들었을 때 ‘어떤 장면에서 들었던 것이다’하고 생각나는 등의 생활 속 기억들이 바로 에피소드 기억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던 장소나 환경 자체가 기억파일로 보관되어서 그 안에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싸잡아 담고 있는 형태인데,
기억 중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강력한 ‘영구기억’의 일종이다.
학습에 관련된 기억의 종류에는 이것 외에도,
단어의 뜻을 기억하는 ‘어의적 기억(semantic memory)’이나,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서 생각해내는 ‘논리적 기억’등이 있지만 이것들도 결국은 그 뿌리가 ‘에피소드 기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에피소드 기억’과 함께 했을 때 더욱 강력한 기억이 된다. 영어 공부를 할 때도 이 원리를 이용해서 하면 훨씬 더 효과적으로 공부할 수 있다.